이번에 연주될 악기들은 어떻게 탄생된 작품들인가요?
김용욱 악기 제작을 시작한 초기에는 제가 직접 눈으로 본 악기들만 만 들었습니다. 크레모나에서 제가 살던 곳 1분 거리에 MdV 악기 박물관 이 있었는데, 이번에 연주될 첼로(D. 1700 Cristiani - Antonio Stradivari)의 경우 당시 박물관에 매일 왔다 갔다하면서 실제 모델을 계 속 참고하며 제작했죠. 제 경우 파가니니가 사용했던 과르네리 델 제수 ‘1742 Il Canonne’ 소리를 듣고 나서 악기 제작을 꿈꿨는데요, 제노바 에 있는 이 악기를 보기 위해 서너 시간 기차를 탄 적도 많았습니다. 악기를 몇 시간 들여다보고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곤 했죠. 볼륨감과 색감 등의 디테일들은 사진으로만은 알 수 없습니다. 스트라드면 스트라드답게, 과르네리면 과르네리답게 실제 모델을 잘 모방해 고유한 특징을 잘 잡아내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게 끝없는 관찰과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든 악기들이 이번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이번 공연에서 글리에르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 Op.39, 도흐나니 현악삼중주를 위한 세레나데, Op.10, 그리고 차이콥스키 현악악사중주 1번, Op.11이 연주됩니다. 실내악으로 꾸린 것 역시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강찬욱 이런 시도가 저 역시 처음이라 아주 흥미롭고 기대가 됩니다. 이 계기를 통해 관객분들이 새 악기에 대한 편견을 깼으면 좋겠다는 바람 도 있고요. 무엇보다 ‘함께 연주하는 실내악’이라는 점에서 악기의 가능 성을 더욱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악기들이 공진하면서 서로 영향을 받고 상호작용하며 또 다른 소리를 경험하게 될 텐데, 새 악기로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건 연주자로서도 귀한 경험이죠.
조재현 연주 특성상 악기 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 여러 편성으로 짜보았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에 비해 비올리스 트들은 모던악기에 상대적으로 익숙하고, 관심도 많은 편이에요. 그래 서 이번 공연이 아주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악기도 2006년에 만들어진 악기예요. 주문 제작을 해서 2년 정도 의 기간 끝에 제 품에 들어왔죠. 새 악기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 렸는데, 그런 밀당(!) 끝에 악기와 많이 친해지게 되었어요(하하). 악기와 씨름하면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악기 지식도 많이 쌓여 갔고, 기다림의 힘이 꽤 크다는 것도 느꼈죠. 시간을 두고 새 악기에 자신의 소리를 입혀 가는 과정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작업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악기를 길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 만 이 부분이 모던악기를 사용하는 데 있어 망설여지는 부분이기 도 하죠. 여기에 대한 연주자님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백은교&조재현 맞습니다. 물리적 시간을 놓고 본다면 연주가 거의 되지 않은 모던악기 보다는 계속 연주되어온 올드악기가 익숙해지는 데 더 수월합니다. 하 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드악기가 무조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해외에서 좋은 올드악기라고 구입했는데 우리나라의 온도, 습도에 적응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고요. 자신에게 잘 맞는 악기가 결국은 중요하 다고 봅니다.
강찬욱&옥자인 새 악기는 아무래도 저항성이 강해 거친 소리가 나는데, 이 때 소리를 틔우면서 소리가 부드럽게 만들어지기까지, 그러니까 저항성 과 부드러움의 조화를 느끼면서 연주자가 자신의 소리를 찾기까지의 과 정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악기라면, 시간은 가치가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새 악기를 사용할 만한 환경이 현실적으로 되지 못해 이 부분이 아쉽기도 합니다. 입시 등 결과가 바로바로 나와야 하는 연주 가 많아 악기랑 친해지는 데 충분한 시간을 갖기가 아무래도 어렵지요.
악기 전시회나 컨퍼런스가 아닌, 공연장에서 새 악기를, 그것도 완 전한 프로그램으로 들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처음에 어 떻게 이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나요?
옥자인 김용욱 제작자님이 사실 저의 학생입니다(하하). 취미로 바이올 린을 저한테 배우고 계시죠. 그러다보니 제가 제작자님 악기를 여러 번 테스트하면서 소리를 내봤는데, 이렇게 좋은 소리를 가진 악기들이 공 방에만 걸려 있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공연장에서 연주되면 좋을 것 같다고 먼저 제안을 드렸죠.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라 고 생각했어요. 김용욱 제 악기가 공연장에서 어떻게 들릴지는 저도 직접 들어봐야지 알 수 있는데, 그런 기회를 갖기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평가회나 전시회 에서는 악기 평가를 긍정적으로 받았지만, 홀에서 연주되고 들리는 건 또 다른 차원이니까요. 제 악기의 장단점을 더 명확히 파악하고, 유의미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이번 연주의 주 인공은 제가 아니라 도트 앙상블입니다. 악기는 도구일 뿐이고 결국, 음악 을 연주하고 감동을 전하는 건 연주자들이니까요. 흔쾌히 함께해주신 선 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작자님은 공학 엔지니어 출신이시죠. 물리적, 공학적 지식이 현악 기 제작에 어떤 밑거름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용욱 산업체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광학장비를 개발하는 하드웨어 개 발자로 일했어요. 그러니까 제가 했던 일은, 구조물의 변형을 미리 감지하 고 데이터를 해석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일이었죠. 저는 악기도 작은 구조체로 봅니다. 악기의 진동, 온도와 습도에 따른 소리 변화 등 물리적 접근을 통해 원인과 결과를 예상하죠. 회사에서 일했던 것처럼 변수에 어 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크레모나에서도 단순히 악기 잘 만드는 비법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악기 원리 자체에 대해 많이 질문하 고, 관련 과학 논문도 많이 찾아보았어요. 제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워서 크 레모나 마이스터들이 저를 그냥 엔지니어라고 불렀죠(하하). 백은교 연주자 입장에서는 제작자가 과학적, 구조적으로 설명해주면 더 신뢰가 갑니다. mbti T처럼요(하하). 연주자도, 제작자도 소리에 대해 추 상적으로만 빠지게 되면 문제 해결이 결국은 어렵거든요. 소리에 대한 이 미지나 느낌을 연주자가 말했을 때, 그 이미지를 과학적 측면으로 제작자 가 말씀해주시면 더 효율적인 대화가 가능하죠. 서로의 언어를 잘 아는 것 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악기, 좋은 제작자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용욱 공학적 접근이 물론 효과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변수가 많다는 것 이 악기 제작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엔지니어로 일할 때는 실험을 통해 비교적 높은 확률로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악기는 예측이 어려운 영역이라 확언할 수 없죠. 연주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가장 큰 변수니 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정성을 다해 악기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를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소리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구성 요소들이 정확히 세팅되어 잘 결합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결합이 온전하다면 기본적인 소리 상태는 좋을 수 있다고 보거든요. 이것이 제 할 일이라면, 그다음은 연주자들의 품에서 커나가야겠지요. 과 거에 새 악기였던 올드악기가 연주자들과 함께 익어나간 것처럼요.
도트앙상블 - Project Quartet : The New
3월 13일 19시 30분 거암아트홀
글리에르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 Op.39, 도흐나니 현악삼중주를 위한 세레나데, Op.10, 차이콥스키의 현악사중주 1번, Op.11
더 스트라드 코리아 2024년 3월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