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ad 4월호 Concert Review

현악기 제작자 김용욱, 도트앙상블 연주회

3월 13일 거암아트홀

세기의 침묵을 깨우다

도쿄 현악 사중주단을 기억하는? 이들은 1969년부터 2013년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한 굴지의 실내악단이었다. 특히 이들은 네 대의 스트라디바리우스(이른바 ‘파가니니 콰르텟’이라 불리우는)만을 사용하여 연주하는 것으로 더욱 유명했는데, 이들의 탁월한 연주 실력과 더불어 범접할 수 없는 악기들의 조합으로 그 명성과 희소성은 가히 천상계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한 제작자만의 악기로 연주되는 실내악단이나 오케스트라를 생각해 보자. 전 세계적으로 따져봐도 사실상 손에 꼽을 정도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음을 생각하면 현악기 제작자 김용욱의 악기만이 사용된 이 독특한연주회는 과감하면서도 참신한 시도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도트양상블의 멤버(바이올리니스트백은교, 옥자인, 비올리스트 조재현, 첼리스트 강찬욱)들은 점차적으로 인원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각 악기의 색채를 분명히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첫 곡으로 연주된 러시아 작곡가 라인홀트 글리에르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8개의 소품은 연주회 전체의 윤곽을 잡는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은교는 1745년산 'Leduc, Szeryng' 과르네리 델 제수 모델로 제작한 악기를, 그리고 이 연주회 내내 한 곡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 강찬욱은 1700년산 'Cristiani' 스트라디바리우스 모델의 첼로를 연주하였다.

우선 가장 먼저 든 감상은 제작자가 이 두 악기를 가장 바깥의 음역에 배치한 것은 분명 타당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소리로 유명한 과르네리 델 제수와, 따스한 음색의 바이올린과 달리 레이저와 같이 날카로운 소리로 잘 알려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첼로로 두꺼운 테두리를 둘러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두 악기 다 놀라울 정도의 순발력과 유연성을 가졌으며, 음량의 풍부함이나 비브라토의 전달에 있어서는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바이올린의 경우 풍부하고 달콤한 저음에 비해 고음을 연주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으며, 첼로의 경우는 코드나 아르페지오를 연주하는 데 용이하지 않은 점이 포착되었다.

사실 이와 같은 증상의 유일한 처방은 시간이다. 아직 만들어진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악기에서 농익은 소리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사실상 손에 꼽을 정도이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음을 생각하면 현악기 제작자 김용욱의 악기만이 사용된 이 독특한연주회는 과감하면서도 참신한 시도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현악 삼중주를 위한 도흐냐니의 '세레나데'가 연주되었다.이번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옥자인이 1721년산 'Lady Blunt' 스트라디바리우스 모델의 악기를, 그리고 조재현은 특이하게도 1785년산 과다니니 악기를 모델의 비올라를 가지고 등장하였다. 확실히 바이올린의 소리는 앞의 작품에 비해 부드럽고 밝았으며, 네 개의 현 모두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비올라의 경우에는 과다니니 특유의 단단한 소리를 훌륭히 재현해냈으며, 특히 아르페지오를 연주할 때에는 옆의 두 악기를 압도할 정도로 강력한 소리의 다발을 뿜어내었다. 그리고 아까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첼로의 고음이 이 곡에서 빛을 발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만 바이올린은 델 제수 모델과는 반대로 저음이 확실히 약했으며, 비올라의 경우 다이내믹 조절이 유연하지 않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네 대의 악기를 모두 만나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인 차이콥스키의 현악 사중주 1번은 각 악기들의 명암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탁월한 선곡이었다. 특히 음정을 맞추기 어렵기로 잘 알려진 1악장 도입부를 도트 앙상블은 어떠한 문제없이 한 대의 아코디언과 같이 연주해냈으며, 동시에 공학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김용욱 제작자가 소리의 과학을 치밀하게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단지 한 사람이 제작한 악기를 연주하기에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결과라고 치부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훌륭한 결과였다. 유명한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의 경우에도 네 대의 악기 모두가 약음기를 끼고 있었지만 음량의 변화는 거의 없이 음색의 변화만 나타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춤곡과도 같은 마지막 두 악장에서는 네 악기의 즐거운 조화를 원 없이 들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느낀 점은, 피아노로 연주할 때에는 네 대의 악기가 모두 훌륭하게 어우러지지만, 포르테로 연주할 때에는 내성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글을 마치며 되짚어 보고 싶은 것은 'Leduc, Szeryng'을 제외한 나머지 세대의 오리지널 악기들은 경매로 팔리거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사실상연주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 악기들의 소리를 무대에서 들을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들을 토대로 작품을 완성한 김용욱 제작자의 열정은 단지 좋은 악기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몇 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저 위대한 선배 제작자들의 혼을 깨우는 듯한 감동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앞으로 그의 악기들이 어떻게 익어갈지 매우 기대된다.

글. 바이올리니스 최낙원